영어 라디오가 시작된다고 한다. 모든 방송을 영어로 하는 라디오이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어도 영어 방송이 한두개 정도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국제화로 인한 하나의 결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영어 방송은 우리나라에 와있는 외국인들을 위한 영어 방송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의 영어 공부를 위한 영어방송이 목적이라는 것이 다른 점이다.
최근 재밌게 읽었던 E. Gombrich의 A Little History of the World에 보면 역사라는 강물을 비행기를 타고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비행기에 내려 직접 강둑에서 보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라는 말이 나온다. 절대적으로 맞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가 먼 역사의 흐름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어떤 모습을 갖고 있을지 알기 어렵다.
1930년대 일본어 전용 정책이 시작되었을 무렵에도 우리의 역사책에는 많은 저항이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 민초들의 삶에서는 그런 저항은 멀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특히, 전광용의 소설 꺼삐딴 리의 주인공처럼 실제로 득세를 하고 사회지도층이었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앞장서서 일본어를 배우고, 해방 후 러시아어나 영어를 배워 러시아와 미국에 줄을 댈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즉, 훗날의 관점에서 보면 저항세력이 역사의 주류였지만, 당시 사회의 주류는 바로 일본어 전용 정책에 순응을 하다 못해 앞장서서 네이티브 수준으로 일본어를 배웠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불고 있는 영어 광풍은 영어를 쓰는 계층과 아닌 계층을 완전히 갈라놓았고, 영어를 쓰는 계층간에 결속력까지 느끼는 상태가 되버렸다(서울의 몇몇 동네에서는 술집에서 영어반 한국어반 사용되는 것을 많이 본다). 국제화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몇 퍼센트가, 아니 대기업이라 하더라도 몇 퍼센트가 영어를 일상에서 사용하는 업무를 보는지 궁금하다. 만약 일년에 하루 이틀 사용하는 영어라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 인력을 활용하고 대부분의 국민을 영어 교육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것이 국가전체적인 차원에서 남는 장사가 아닐까 생각된다.
지금 이러한 광풍은 마치 러시아가 물밀듯이 내려올 때 꺼삐딴 리의 러시아어 배우기를 보는 듯하다. 결국 전쟁 이후 꺼삐딴 리는 영어를 배우고 미국의 초청을 받아 도미하게 된다. 물론, 잘 먹고 잘 살았을 것이다. 당연히 영어를 못하는 조선의 백성들은 남아서 고생을 하였겠지만...
우리말을 무조건 지켜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 민족에게 불필요하다면 우리말을 바꾸는 것도 괜찮다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소중한 자산을 버릴 때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훗날 100년 뒤 우리의 이런 모습이 부끄럽지나 않을지 걱정이 되는 것이다. 마치, 꺼삐딴 리를 보면서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지면서도 결국 승리자는 꺼삐딴 리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역사가 더욱 부끄러운 것처럼 말이다.
수업 시간에 영어만 써야하는 대학교가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대학교처럼 국제적인 연구를 해야"만"하는 상위 몇 학교의 학생들을 제외하고 자국어로 강의하는 것이 전달력과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서 더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과연 국제화의 고속도로로 진입하기 위한 과정인지 아니면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인지 수십년 후 우리 다음 세대가 평가해 줄 것이겠지만, 소심한 나로서는 역사가 뒤로 가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어도 영어 방송이 한두개 정도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국제화로 인한 하나의 결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영어 방송은 우리나라에 와있는 외국인들을 위한 영어 방송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의 영어 공부를 위한 영어방송이 목적이라는 것이 다른 점이다.
최근 재밌게 읽었던 E. Gombrich의 A Little History of the World에 보면 역사라는 강물을 비행기를 타고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비행기에 내려 직접 강둑에서 보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라는 말이 나온다. 절대적으로 맞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가 먼 역사의 흐름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어떤 모습을 갖고 있을지 알기 어렵다.
1930년대 일본어 전용 정책이 시작되었을 무렵에도 우리의 역사책에는 많은 저항이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 민초들의 삶에서는 그런 저항은 멀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특히, 전광용의 소설 꺼삐딴 리의 주인공처럼 실제로 득세를 하고 사회지도층이었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앞장서서 일본어를 배우고, 해방 후 러시아어나 영어를 배워 러시아와 미국에 줄을 댈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즉, 훗날의 관점에서 보면 저항세력이 역사의 주류였지만, 당시 사회의 주류는 바로 일본어 전용 정책에 순응을 하다 못해 앞장서서 네이티브 수준으로 일본어를 배웠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불고 있는 영어 광풍은 영어를 쓰는 계층과 아닌 계층을 완전히 갈라놓았고, 영어를 쓰는 계층간에 결속력까지 느끼는 상태가 되버렸다(서울의 몇몇 동네에서는 술집에서 영어반 한국어반 사용되는 것을 많이 본다). 국제화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몇 퍼센트가, 아니 대기업이라 하더라도 몇 퍼센트가 영어를 일상에서 사용하는 업무를 보는지 궁금하다. 만약 일년에 하루 이틀 사용하는 영어라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 인력을 활용하고 대부분의 국민을 영어 교육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것이 국가전체적인 차원에서 남는 장사가 아닐까 생각된다.
지금 이러한 광풍은 마치 러시아가 물밀듯이 내려올 때 꺼삐딴 리의 러시아어 배우기를 보는 듯하다. 결국 전쟁 이후 꺼삐딴 리는 영어를 배우고 미국의 초청을 받아 도미하게 된다. 물론, 잘 먹고 잘 살았을 것이다. 당연히 영어를 못하는 조선의 백성들은 남아서 고생을 하였겠지만...
우리말을 무조건 지켜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 민족에게 불필요하다면 우리말을 바꾸는 것도 괜찮다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소중한 자산을 버릴 때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훗날 100년 뒤 우리의 이런 모습이 부끄럽지나 않을지 걱정이 되는 것이다. 마치, 꺼삐딴 리를 보면서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지면서도 결국 승리자는 꺼삐딴 리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역사가 더욱 부끄러운 것처럼 말이다.
수업 시간에 영어만 써야하는 대학교가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대학교처럼 국제적인 연구를 해야"만"하는 상위 몇 학교의 학생들을 제외하고 자국어로 강의하는 것이 전달력과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서 더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과연 국제화의 고속도로로 진입하기 위한 과정인지 아니면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인지 수십년 후 우리 다음 세대가 평가해 줄 것이겠지만, 소심한 나로서는 역사가 뒤로 가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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