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를 보는 우리학교 그리고 다른 학교 학생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학생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원래 저는 제가 만든 삶의 철학인 "남이사" 주의를 실천하려고 노력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남이사주의는 남씨 성을 갖은 사람이 이사가 된다는게 아니라 남의 개인적인 삶에 가치 판단을 하지 말고 남의 내 개인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가치 판단에 신경쓰지 말자는 생각입니다. 즉, 서로에게 피해가 안 간다면 양말을 입에 물고 물구나무 서기를 한채로 응가를 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게 보거나 신경쓰지 않는다는 철학이지요. 저 역시 제 할 도리를 다 하는 안에서는 자유롭게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보니 남이사주의가 과연 제게 옳은 정치적 스탠스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됩니다. 다른 교수님들은 학생들이 지나가다가 인사를 안한다던가 전화나 메일에 부적절한 표현이 있다면 혼내시기도 하고 가르치시기도 하지만 저는 그런 잘못된 부분들은 언젠가 본인에게 화가 되고 그러다보면 스스로 배우겠지 싶어서 아무 이야기 안하고 그저 웃고 넘기는 때가 대부분입니다. 어쩌면 무책임한 자세이고 어쩌면 스스로 깨우치길 기다리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원래 10년의 시간 차이가 나면 서로 다른 생각의 차이는 극복할 수 없습니다. 남이사주의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죠. 문자가 통화보다 답답한 의사소통 수단이라 생각하지만, 문자를 좋아하는 학생들은 자유롭게 문자를 보낼 수 있고(그건 학생 마음), 저는 전화로 응답하지요(그건 제 마음). 하지만, 서로 기분이 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서로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또는 어떤 큰 일을 향해 가는데 서로 대하는 자세나 표현으로 인해 그 일을 그르친다면 이것은 남이사주의와는 다른 문제입니다.
바로 예의와 매너의 범주에 속하는 문제가 되겠습니다. 예의는 예를 표하는 행동을 말하는데 예는 사람이 갖추어야 하는 도리를 말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설명말고 제 나름대로 정의하는 예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마음"이 되겠습니다.
어제 택시를 타고 가다가 우연찮게 언짢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바로 우리학교 학생 중 일부가 어떤 택시기사 아저씨 분들과 길에서 언쟁을 벌였다더군요. 하지만, 그 이유는 늘상 흔히 듣는 "쳐다봐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기사분이 학생들을 본 이유는 길거리에서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더군요. 저 역시 길에서 쳐다본다고 시비 붙는 사람들을 많이 봐서 그 이유는 납득할 수 있지만 엘리트 후보들인 유니스트 학생들이 그런 이유로 길에서 싸움이 붙어서야 스스로 나는 잡배일 뿐이라고 외치는 격입니다. 정 불만이 있다면 "무엇때문에 보고 계십니까?"라고 물어보았어야 엘리트 다운 것이지요. 그리고 그 답이 "너무 시끄럽지 않나요"라고 한다면 분명 그 부분은 본인들의 잘못이 맞으니 "시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렇게 보지 말아주십시요."라고 자신의 잘못된 부분을 수긍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명백히 밝히는 것이 엘리트의 자세인 것입니다. 여기 제가 엘리트로서 필요한 두가지 자질에 대해 적어보겠습니다.
1. 기품
어릴 때에는 거칠게 보이고 다듬어지지 않은 듯이 막 나가는 것이 멋지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스무살 나이에 잘 다듬어진 품행을 보인다면 일견 답답하고 샌님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몸에 벤 예의는 대학졸업하고 하루 아침에 바꾼다고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어렸을 때부터 품행을 바르게 하고 좋은 생각으로 좋은 행동을 한다면 세월이 흘러 20대 후반이 되었을 때 기품이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안타깝게도 좋은 학교를 나왔다는 사람들 중에도 이러한 기품이 안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저를 포함해서 :)). 기품은 타인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전해주고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위에서 찍어누르는 권위와는 다른 힘입니다. 이러한 기품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몸에 습관처럼 베도록 노력을 해야합니다.
우리들이 흔히 명문가의 자제라던가 귀족적인 사람이라는 표현을 들으면 명품과 좋은 물건으로 몸을 휘감는 것을 상상하지만 실제 그런 사람이 기품이 없다면 천박하게 보일 뿐입니다. 제가 발견한 한가지 사실은 큰 기업의 임원들, 유명한 교수님들, 크게 성공한 사업가들은 기품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있어서 기품이 생긴 것인지, 기품이 있기에 그런 자리에 설 수 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기품이 없는 사람이 훌륭한 자리에 설 수는 없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기품은 자신에 대한 자존감과 타인에 대한 존중이 한데 어우러짐과 함께 이것을 밖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가 합쳐져 생기게 됩니다. 예를 들어 기품에 중요한 요소인 단정한 옷차림은 상대방을 정중히 모시겠다는 마음가짐의 표현이지요. 호텔 직원이 청바지에 구겨진 셔츠를 입고 인사한다면 과연 손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의심이 들겠지요? 교수님들이 항상 재킷까지 단정하게 입고 수업에 들어오시는 것은 학생들을 정성으로 대하는 마음의 표현인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자존감은 기품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자신이 뛰어나다거나 훌륭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다면 타인을 배려할 마음의 여유는 애시당초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단정하게 옷을 입고 거울을 보면서 어깨에 힘을 주고 자신의 장점들과 오늘 내가 살 자랑스런 하루를 생각하세요. 그 때의 당당한 표정이 여러분이 하루 종일 유지해야할 기본 표정이 되겠습니다. 살짝 입가의 웃음도 생길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타인에게 공격적이고 배려하지 않는 사람은 그 만큼 자신이 능력이 없고 여유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아기들과도 주먹다짐을 합니까? 아기들이 실수하면 웃어주고, 아기들이 어려워하면 도와주죠? 여러분이 능력면에서 압도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에 그런 마음가짐이 생기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당당한 뒤에는 타인에게 베푸는 자세를 몸에 베게하면 됩니다. 자신은 당당하고 멋진 사람이니 자신 뒤에 문으로 들어올 사람을 위해 잠깐 문을 잡아주거나 자리를 양보하거나 전화를 걸었을 때 당당한 나 자신에 대해 즐겁게 소개하는 일(인사를 하고 이름을 밝히는 일)은 귀찮은 일이 아니라 멋지고 신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흔히 젊은 사람들은 마음의 여유가 없고 자존감이 확실치 않아 타인에게 배려를 베풀 여유가 없습니다. 젊잖다는 말의 어원은 바로 젊은이에게 보이는 이러한 특성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젊지 않다"라는 말에서 온 것입니다. 놀거나 승부를 가릴 때엔 젊은 마인드로 패기있게 상대하고 타인을 대할 때엔 젊지 않게 대하는 것이 기품을 만들기 위한 기본기입니다.
2. 의견의 관철
세상을 살면서 자신의 의견대로 무엇인가를 바꾸어야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 때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견이 정당하다는 확신과 받아들이는 타인의 입장에서의 고려가 중요합니다. 내강외유의 정신이 기품을 위해서나 의견의 관철을 위해서나 중요한 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제가 지금 학생들에게 가장 먼저 발견한 문제점이 바로 문제점의 정확한 분석과 대안 제시에 대한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것이 불편하거나 아니면 더 좋은 방향으로 만들기 위해 주장을 펼쳐야 한다면 그 문제점의 원인이 무엇이고 피해가 얼마나 되는지, 또는 어떤 것을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나 노력이 얼마나 되며 그것이 가져올 이득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설명해야할 사람은 바로 자신입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식사의 질이 낮다라고 주장한다고 한다면 (네, 저도 동감하는 바입니다만...) 타학교의 급식 형태 및 단가를 조사하고 메뉴 사진 등을 찍어서 (친구들에게 부탁을 한다던가 해서 말이지요) 자료를 준비하고, 우리학교의 메뉴를 사진을 찍던가 문서 형태로 작성을 해서 비교를 한다면 상대방은 요즘 원가가 올라서 등의 여러 가지 이유를 댈 여지가 사라집니다. 즉, 상대방의 입장에서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는 맹목적인 고집과 비난이 아닌 이성적인 대응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그 표현방식은 물론 공손하고 차분해야겠지요. 자신의 주장이 합리적이고 그 주장에 대한 근거가 철저하게 뒷받침되었다면 목에 핏대를 올리고 거친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없는 것이지요. 사회에서는 거친 표현을 써서 안 될일을 되게 만드는 경우는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열린 사회로 나아가는 길인 것이지요. 집회, 데모, 실력 행사로 관철되는 일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잘 준비된 보고서나 연설이 더 강한 힘을 갖는 것이 이성에 기반한 열린 사회입니다.
소위 키보드 워리어라고 불리는 키보드로 거친 표현을 일삼으며 실제로는 바꾸어보려는 단 한가지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키보드 워리어로 끝날 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만 주고 자신의 인격의 저열함을 만천하에 공개할 뿐 아무리 거친 표현으로 선동을 해도 시간이 지나면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고 자신의 무게는 점점 가벼워질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직접 움직이세요. 키보드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은 상대방을 설득하는게 아니라 적으로 만드는 것 뿐입니다. 무엇이 득이되겠습니까?
다시 한 번 정리한다면, 자신의 뜻을 주장할 때엔 그에 상응하는 철저한 준비는 자신의 몫이고, 철저한 준비가 뒷밤침 된다면 공손하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상대방을 자신의 의견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최근 저 뿐만 아니라 많은 교수님들께서 학생들이 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인격적인 면에서 성숙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들을 많이 하십니다. 어쩌면 이런 생각에 대해서도 적개심으로 대하는 학생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품이 있고 자신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잘 전달하는 사람은 인생이 성공적일 것이라는 사실을 먼저 깨닫고 노력한다면 분명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존경까지도 받을 수 있는 기품있는 젊은 엘리트가 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서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원래 저는 제가 만든 삶의 철학인 "남이사" 주의를 실천하려고 노력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남이사주의는 남씨 성을 갖은 사람이 이사가 된다는게 아니라 남의 개인적인 삶에 가치 판단을 하지 말고 남의 내 개인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가치 판단에 신경쓰지 말자는 생각입니다. 즉, 서로에게 피해가 안 간다면 양말을 입에 물고 물구나무 서기를 한채로 응가를 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게 보거나 신경쓰지 않는다는 철학이지요. 저 역시 제 할 도리를 다 하는 안에서는 자유롭게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보니 남이사주의가 과연 제게 옳은 정치적 스탠스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됩니다. 다른 교수님들은 학생들이 지나가다가 인사를 안한다던가 전화나 메일에 부적절한 표현이 있다면 혼내시기도 하고 가르치시기도 하지만 저는 그런 잘못된 부분들은 언젠가 본인에게 화가 되고 그러다보면 스스로 배우겠지 싶어서 아무 이야기 안하고 그저 웃고 넘기는 때가 대부분입니다. 어쩌면 무책임한 자세이고 어쩌면 스스로 깨우치길 기다리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원래 10년의 시간 차이가 나면 서로 다른 생각의 차이는 극복할 수 없습니다. 남이사주의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죠. 문자가 통화보다 답답한 의사소통 수단이라 생각하지만, 문자를 좋아하는 학생들은 자유롭게 문자를 보낼 수 있고(그건 학생 마음), 저는 전화로 응답하지요(그건 제 마음). 하지만, 서로 기분이 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서로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또는 어떤 큰 일을 향해 가는데 서로 대하는 자세나 표현으로 인해 그 일을 그르친다면 이것은 남이사주의와는 다른 문제입니다.
바로 예의와 매너의 범주에 속하는 문제가 되겠습니다. 예의는 예를 표하는 행동을 말하는데 예는 사람이 갖추어야 하는 도리를 말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설명말고 제 나름대로 정의하는 예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마음"이 되겠습니다.
어제 택시를 타고 가다가 우연찮게 언짢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바로 우리학교 학생 중 일부가 어떤 택시기사 아저씨 분들과 길에서 언쟁을 벌였다더군요. 하지만, 그 이유는 늘상 흔히 듣는 "쳐다봐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기사분이 학생들을 본 이유는 길거리에서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더군요. 저 역시 길에서 쳐다본다고 시비 붙는 사람들을 많이 봐서 그 이유는 납득할 수 있지만 엘리트 후보들인 유니스트 학생들이 그런 이유로 길에서 싸움이 붙어서야 스스로 나는 잡배일 뿐이라고 외치는 격입니다. 정 불만이 있다면 "무엇때문에 보고 계십니까?"라고 물어보았어야 엘리트 다운 것이지요. 그리고 그 답이 "너무 시끄럽지 않나요"라고 한다면 분명 그 부분은 본인들의 잘못이 맞으니 "시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렇게 보지 말아주십시요."라고 자신의 잘못된 부분을 수긍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명백히 밝히는 것이 엘리트의 자세인 것입니다. 여기 제가 엘리트로서 필요한 두가지 자질에 대해 적어보겠습니다.
1. 기품
어릴 때에는 거칠게 보이고 다듬어지지 않은 듯이 막 나가는 것이 멋지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스무살 나이에 잘 다듬어진 품행을 보인다면 일견 답답하고 샌님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몸에 벤 예의는 대학졸업하고 하루 아침에 바꾼다고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어렸을 때부터 품행을 바르게 하고 좋은 생각으로 좋은 행동을 한다면 세월이 흘러 20대 후반이 되었을 때 기품이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안타깝게도 좋은 학교를 나왔다는 사람들 중에도 이러한 기품이 안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저를 포함해서 :)). 기품은 타인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전해주고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위에서 찍어누르는 권위와는 다른 힘입니다. 이러한 기품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몸에 습관처럼 베도록 노력을 해야합니다.
우리들이 흔히 명문가의 자제라던가 귀족적인 사람이라는 표현을 들으면 명품과 좋은 물건으로 몸을 휘감는 것을 상상하지만 실제 그런 사람이 기품이 없다면 천박하게 보일 뿐입니다. 제가 발견한 한가지 사실은 큰 기업의 임원들, 유명한 교수님들, 크게 성공한 사업가들은 기품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있어서 기품이 생긴 것인지, 기품이 있기에 그런 자리에 설 수 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기품이 없는 사람이 훌륭한 자리에 설 수는 없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기품은 자신에 대한 자존감과 타인에 대한 존중이 한데 어우러짐과 함께 이것을 밖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가 합쳐져 생기게 됩니다. 예를 들어 기품에 중요한 요소인 단정한 옷차림은 상대방을 정중히 모시겠다는 마음가짐의 표현이지요. 호텔 직원이 청바지에 구겨진 셔츠를 입고 인사한다면 과연 손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의심이 들겠지요? 교수님들이 항상 재킷까지 단정하게 입고 수업에 들어오시는 것은 학생들을 정성으로 대하는 마음의 표현인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자존감은 기품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자신이 뛰어나다거나 훌륭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다면 타인을 배려할 마음의 여유는 애시당초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단정하게 옷을 입고 거울을 보면서 어깨에 힘을 주고 자신의 장점들과 오늘 내가 살 자랑스런 하루를 생각하세요. 그 때의 당당한 표정이 여러분이 하루 종일 유지해야할 기본 표정이 되겠습니다. 살짝 입가의 웃음도 생길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타인에게 공격적이고 배려하지 않는 사람은 그 만큼 자신이 능력이 없고 여유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아기들과도 주먹다짐을 합니까? 아기들이 실수하면 웃어주고, 아기들이 어려워하면 도와주죠? 여러분이 능력면에서 압도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에 그런 마음가짐이 생기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당당한 뒤에는 타인에게 베푸는 자세를 몸에 베게하면 됩니다. 자신은 당당하고 멋진 사람이니 자신 뒤에 문으로 들어올 사람을 위해 잠깐 문을 잡아주거나 자리를 양보하거나 전화를 걸었을 때 당당한 나 자신에 대해 즐겁게 소개하는 일(인사를 하고 이름을 밝히는 일)은 귀찮은 일이 아니라 멋지고 신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흔히 젊은 사람들은 마음의 여유가 없고 자존감이 확실치 않아 타인에게 배려를 베풀 여유가 없습니다. 젊잖다는 말의 어원은 바로 젊은이에게 보이는 이러한 특성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젊지 않다"라는 말에서 온 것입니다. 놀거나 승부를 가릴 때엔 젊은 마인드로 패기있게 상대하고 타인을 대할 때엔 젊지 않게 대하는 것이 기품을 만들기 위한 기본기입니다.
2. 의견의 관철
세상을 살면서 자신의 의견대로 무엇인가를 바꾸어야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 때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견이 정당하다는 확신과 받아들이는 타인의 입장에서의 고려가 중요합니다. 내강외유의 정신이 기품을 위해서나 의견의 관철을 위해서나 중요한 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제가 지금 학생들에게 가장 먼저 발견한 문제점이 바로 문제점의 정확한 분석과 대안 제시에 대한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것이 불편하거나 아니면 더 좋은 방향으로 만들기 위해 주장을 펼쳐야 한다면 그 문제점의 원인이 무엇이고 피해가 얼마나 되는지, 또는 어떤 것을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나 노력이 얼마나 되며 그것이 가져올 이득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설명해야할 사람은 바로 자신입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식사의 질이 낮다라고 주장한다고 한다면 (네, 저도 동감하는 바입니다만...) 타학교의 급식 형태 및 단가를 조사하고 메뉴 사진 등을 찍어서 (친구들에게 부탁을 한다던가 해서 말이지요) 자료를 준비하고, 우리학교의 메뉴를 사진을 찍던가 문서 형태로 작성을 해서 비교를 한다면 상대방은 요즘 원가가 올라서 등의 여러 가지 이유를 댈 여지가 사라집니다. 즉, 상대방의 입장에서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는 맹목적인 고집과 비난이 아닌 이성적인 대응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그 표현방식은 물론 공손하고 차분해야겠지요. 자신의 주장이 합리적이고 그 주장에 대한 근거가 철저하게 뒷받침되었다면 목에 핏대를 올리고 거친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없는 것이지요. 사회에서는 거친 표현을 써서 안 될일을 되게 만드는 경우는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열린 사회로 나아가는 길인 것이지요. 집회, 데모, 실력 행사로 관철되는 일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잘 준비된 보고서나 연설이 더 강한 힘을 갖는 것이 이성에 기반한 열린 사회입니다.
소위 키보드 워리어라고 불리는 키보드로 거친 표현을 일삼으며 실제로는 바꾸어보려는 단 한가지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키보드 워리어로 끝날 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만 주고 자신의 인격의 저열함을 만천하에 공개할 뿐 아무리 거친 표현으로 선동을 해도 시간이 지나면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고 자신의 무게는 점점 가벼워질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직접 움직이세요. 키보드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은 상대방을 설득하는게 아니라 적으로 만드는 것 뿐입니다. 무엇이 득이되겠습니까?
다시 한 번 정리한다면, 자신의 뜻을 주장할 때엔 그에 상응하는 철저한 준비는 자신의 몫이고, 철저한 준비가 뒷밤침 된다면 공손하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상대방을 자신의 의견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최근 저 뿐만 아니라 많은 교수님들께서 학생들이 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인격적인 면에서 성숙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들을 많이 하십니다. 어쩌면 이런 생각에 대해서도 적개심으로 대하는 학생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품이 있고 자신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잘 전달하는 사람은 인생이 성공적일 것이라는 사실을 먼저 깨닫고 노력한다면 분명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존경까지도 받을 수 있는 기품있는 젊은 엘리트가 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서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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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른이라는 위치로 막 올라온 저희들이지만 어떠한 기본조차 지키지 않은 채, 자신의 주장이 관철될때까지 때를 쓰는 '어린아이의 주장'은 솔직히 한명의 학생인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는 올바른 태도와 행동양식을 가진 유니스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물론 저 혼자만의 사고를 바꾸는 것으로 모든이들이 그렇게 쉽게 생각을 고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저 한명부터라도 바뀌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였기에, 또한 교수님의 염려를 조금이나마 덜어 드리기 위해 쓰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학부를 떠나 있는 휴학생으로 교수님 의견에 덧글을 달아보고자 합니다. 물론 유니스트 학생은 아니겠지요:)
현재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인격적인 면에서 성숙할 필요가 있다 라는 생각에는 많은 분들이 동감 하시리라 생각 됩니다.
단순히 유니스트 학생 뿐만 아니라 소위 명문대로 갈 수록 그 정도는 심해지리라 보이고 이것은 대입을 목표로한 대한민국의 교육이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12년 공교육 생활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선택이란 없었습니다. 심지어 사소한 소풍 장소 까지도, 어차피 위에서 정해진 걸 그대로 따를 수 밖에 없었기에 그 어떤 합리적인 의견을 개진할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결과가 같아지더라도 자신들이 합리적으로 결정하였다는 그 과정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았기에 자신의 의견을 표현함에 있어서 함리적이기 보단 감정적이고 과격해 지는게 아닐까 합니다.)
대한민국 공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대입이었습니다. 간혹 몇몇 선생님들이 '공부만 잘하면 뭐하냐, 사람이 되야지' 라고 가르치시지만, 대입을 향한 경쟁이 점점 치열해 질수록 그런 가르침은 흘러가는 공염불일 뿐입니다.
아마도 유니스트 학생이라면 고등학교 시절 공부외에 다른 부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진 못했을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교수님 시절에도 많은 사람들이 대학 진학을 위해서 어둠을 밝히며 치열하게 공부를 하셨고, 오히려 요즘 학생들의 실력이 하향 평준화 되어 간다는 말도 많지만 고등학교 시절의 정신적 압박감은 날이 갈 수록 심해진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견해 입니다.
3m를 뛰는 벼룩이 크기 1m짜리 통 안에 갇혀 살다 보면 통 밖에 나와도 1m 밖에 뛸 수 없다고 합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젊은 학생들을 오랬동안 갇혀만 살아와서 교수님이 바라시는 그런 부분이 부족하다 못해 잘려 나가 버린게 아닐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어쩌다 보니 대한민국 공교육을 비판하는 잡설이 되버렸네요, 교수님이 학생들을 이해하시는데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해서 의견 올립니다.
학부 생활을 돌이켜 보면 교수님과의 교류가 거의 없었습니다. 학교 특성상 대학원 중심이기도 했지만 많은 부분이 아쉬웠습니다. 이렇게 학생들에게 좋은 교훈이 되는 글을 쓰시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보니 세련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지 못한 스스로가 불만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의식적으로 노력하고는 있지만 오랫동안 붙은 습관이다보니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사회에 나갈 학생들이니 대학 때부터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알고 노력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네요.
호오.. 이제 교수로서의 풍모가 나타나기 시작하는겐가.
자네 멋진걸??
오.. 서교수님 이런 학생들을 위한 발전적인 말씀을..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도 이제 늙었군요. (참고로 zfss는 4!의 조합을 갖는 그 유명한 네글자의 이니셜입니다.)
이교수, 이제 30대도 중반으로 다가가는데 ZFSS 같은 개그는 좀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요? SFZS
유니스트학부모입니다.면접보고 와서 합격한 학교 마다하고,
교수님과 도서관이 멋지다고 공부하고 싶다며 진로를 변경한 이유를 알겠
습니다. 아이들 싸이 '우리들이야기'에 교수님글 퍼 올리고 이글을 씁니다. 펌글 허락하시지요? 감사드립니다.
입시생인 아들이 2010 유니스트 입학사정관전형(테크노경영)을
신청 했습니다.
아들에게 꼭 맞는 학교같아서
적극적으로 추천 했답니다.
좋은 결과를 얻었으면 하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대내외적으로 학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1기 재학생입니다. 항상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많이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항상 자신의 행동에 반성하고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제가 학부전공이 달라 교수님의 강의는 들을 기회가 거의 없지만 학교홈페이지나 클럽의 글을 보며 항상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도 특목고 1기를 지내면서, 1기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1기의 어깨에 학교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남들보다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가르침 부탁드리며, 며칠 남지않은 방학 뒤에 뵙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1기 재학생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