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아이폰의 폭풍이 몰아닥친 이후로 연일 신문의 기술 및 경영란을 장식하는 뉴스는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특히 임베디드 소프트웨어의 경쟁력 부재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뉴스들입니다.
도대체 우리의 소프트웨어 기술력은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많은 전문가 또는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진단과 해결책을 내놓았습니다. 저는 감자가 뜨거울 땐 만지지 않는다라는 나름의 철학을 갖고 살기에 잠자코 있었다가 요즘 좀 잠잠해진 틈을 타서 제 나름의 분석을 적어봅니다.
우리나라의 기술력은 세계에서 손꼽아주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TV, 자동차, 반도체.
하지만, 우리나라가 세계 수위가 된 분야의 공통점이 몇가지 있습니다.
1. 선두 기업의 기술을 빠르게 흡수한다
2. 더 싸게 만든다
3. 수치적 개선에 매우 강하다 (램 집적도 두 배, 엔진 마력 향상 등)
정량적인 지표가 가치의 중요한 척도가 되는 하드웨어 시장에서는 이상의 세가지 강점을 유지한다면 승리가 확실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세가지 강점은 어느 영역에 들어가면 오히려 발목을 잡는 힘(drag force)으로 작용합니다.
"Less is More - Robert Browning"
아이폰에 번들로 딸려오는 프로그램은 매우 적습니다. 광고에서 수많은 게임이 기본으로 제공된다는 국내 모사의 제품과 비교하면 터무니 없이 적은 기본 프로그램들이 제공됩니다. 하지만 곧 아이폰은 사용자의 필요성에 맞게 제작된 질좋은 프로그램들로 꽉차게 되고, 국내 모사의 제품은 여전히 활용도가 낮고 완성도도 없는 수많은 게임들만 갖고 있게 됩니다.
승리 전략의 3번 포인트인 정량적 경쟁에 익숙한 우리 기업들에게 비움으로써 채우는 전략은 매우 생소할 것입니다. "경쟁 업체의 제품은 게임이 10개입니다" "그래? 그럼 우린 12개로 가" 이런 분위기에서 "번들 프로그램을 모두 제거하는 것은 어떨까요?"라고 말하는 것은 대단한 배짱이 필요할 것입니다. 번들 프로그램을 모두 제거한다면 정량적으로 신제품의 우수성을 윗선에게 보고해야하는 중간관리자의 입장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그냥 편하게 "우린 12개"가 더 자리 보전하기에 좋은 전략이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생각입니다.
소프트웨어의 감성 품질은 정량적으로 계량할 수 없습니다. 관료적인 조직에서는 정성적인 우수성은 정치적으로 스코어가 메겨질 여지를 주기 때문에 모두가 피하고 싶은 접근일 것입니다 (국내 대학들 역시 논문을 갯수로 세는 관행으로 저질 논문이 무더기로 쏟아지는 부작용을 겪고 있습니다). 오후 1시에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출근하고 사무실에서 물총 싸움을 할 수 있는 기업이거나 탁월한 센스의 CEO가 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회사에서나 감성 품질을 중시하는 배짱좋은 의견들이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을 것입니다.
"Who controls the past controls the future - George Orwell"
소프트웨어가 자동차나 티비와 다른 점은 소프트웨어는 플랫폼이라는 것입니다. 소프트웨어는 일반적으로 그 자체가 완성품으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다른 소프트웨어와 상호 연동되어 작동합니다. 따라서, 일단 사용자가 어떤 제품에 안착하면 정말 대단한 이유가 없고서는 그 제품을 계속 사용하게 됩니다. 이러한 점이 우리의 강점인 1번 전략 "fast follow"가 통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초기 소프트웨어 사용자층이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넘어가게 되면 그 이후로는 사용자가 사용자를 유도하는 연쇄반응(chain reaction)이 발생합니다. 많은 사용자는 개발자들을 유도하고 개발자들이 개발한 많은 소프트웨어는 더 많은 사용자를 유도합니다. 비슷한 제품의 비호환 제품이 등장해도 이 연쇄반응을 깨고 사용자나 개발자들이 이주하는데 드는 물리적 심리적 비용이 워낙 크기에 후발제품들의 사용자층은 쉽사리 증가하지 않습니다. 이게 바로 80년대 중반 Mac이 PC에 참패했던 이유였습니다. Mac은 하드웨어적으로나 소프트웨어적으로나 PC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하였으나 초기 사용자층과 개발자층의 외면이 누적되어 결국 90년대말 급격한 전략수정이 있기까지 20년간 언제나 패자로 남아있었습니다.
이미 많은 사용자층을 보유한 플랫폼과 유사한 플랫폼을 출시하여 사용자들을 빼앗아 온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것이 우월하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PC가 열등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지만 많은 사용자층으로 인해 누적된 킬러어플리케이션들과 그러한 어플리케이션들에 투자한 자산을 일거에 날려버릴 수 없기에 계속해서 PC의 인질로 살아온 기업 및 개인 고객들을 생각해본다면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fast follower"가 된다는 것은 시장 석권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이 들립니다.
지금 Android가 극복해야하는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입니다. iPhone을 위해 존재하는 그 많은 App과 그 App들을 개발했던 개발자들은 이미 Apple의 인질이자 무기입니다.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엄청난 세력을 등에진 Android마저 이 문제를 극복하기 힘든데 하물며 Bada는 메이져 셰어 홀더가 될 수 있을까요?
"Tigers are in their den"
소프트웨어에서 가격 경쟁력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윈도우즈는 10만원이 넘습니다. 리눅스는 무료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작업은 리눅스를 통해 할 수 있습니다. 편리함도 윈도우즈와 동일한 인터페이스를 사용하여 거의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료인데도 사용자들은 거의 리눅스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우리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선택한 순간 바로 인질이 되기 떄문입니다. 우리나라 인터넷 비지니스가 익스플로러 종속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윈도우즈의 인질이나 다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돈은 선택의 큰 요소가 아닙니다.
아이폰이 현재 포지셔닝하고 있는 고객층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른바 부티크 사용자들(boutique users)입니다. 돈은 돈 많은 사람들에게 있을 것입니다. 아이폰의 인질이 되면 계속해서 앱의 구매를 통해 Apple에게 이익이 흘러들어가게 됩니다 (애플은 앱 판매 소득의 30%를 가져갑니다). 13만 3천개 (2010년 1월 기준) 어플리케이션들이 삼십억번 다운되었습니다. 돈 많은 인질들이 아이폰을 구입한 이후에도 알아서 돈을 갖다 바치고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시장에서는 초기에 사용자들을 잡아놓기만 한다면 어지간한 가격 경쟁력은 의미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플랫폼 소프트웨어는 전체 어플리케이션 가격에 비해 오히려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플랫폼 프로바이더들의 소프트웨어 가격 경쟁력은 재고의 여지도 없는 의미 없는 숫자일 뿐입니다. 더 이상 동일한 품질의 제품을 싸게 공급하는 전략은 통하지 않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농구를 하는가, 축구를 하는가?"
학생들에게나 주변 사람들에게 제가 자주하는 이야기 중에 "무슨 게임을 뛰는지 먼저 파악하고 플레이해라"라는 말을 합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맹목적으로 열심히만 합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인 경우를 많이 봅니다. 물론 열심히 하는 방향과 성공의 길이 맞아 떨어지면 다행이지만 때론 반대 방향으로 열심히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강슛을 날리는 황금다리를 갖고 있는 노력파 선수라 할지라도 농구장에서 그런 짓을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승리를 하고 싶다면 게임의 법칙을 먼저 살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안타깝게도 소프트웨어는 자동차나 전자제품보다는 명품 핸드백에 더 가까운 시장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생소한 시장입니다. 황금 다리라 할지라도 공을 손으로 다루는 연습부터 하지 않는다면 골대에 오버헤드킥을 거듭하다 농구장에서 끌려나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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