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궁

디펜스가 끝나고 논문도 학교에 제출하고 모든 서류상의 일이 끝나 졸업식만 남은 신세가 되었습니다. 좋게 말하면 박사가 되었고 나쁘게 말하면 이제는 학생이라고도 할 수 없는 초고등실업자 신세입니다.

아무튼 아직까진 아침 10시에 랩에 나가 저녁에 들어오고, 랩에서도 여전히 연구를 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만... ㅋㅋㅋ 그나저나 정신적 여유가 생기니 블로그에 글은 더 안 쓰게 되는군요.

최근에 학위라는 것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궁금증이 생기면 이곳저곳을 뒤져서 밝혀내고야 마는 집요한 성격을 갖고 있는 터라 역시 이번에도 집요하게 찾아봤지요.
과연 대학원생들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는 박사 학위는 (아아아아아악~~~!) 무엇일까요.

아시다시피 박사는 Ph.D.라고 적습니다.  라틴어의 Philosophiae Doctor의 약자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철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는 뜻입니다. 다들 잘 아시다시피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학문이 지금처럼 수학, 물리학, 화학 이렇게 나뉘지는 않았습니다. 수학에 강한 철학자 (피타고라스, 아르키메데스), 물리학에 강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탈레스), 화학에 강한 철학자 (엠페도클레스), 인문학에 강한 철학자 (플라톤) 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철학자들은 모든 학문에 간섭을 하는 오지랍을 갖고 있어야 했지요. 결국 다소 전문화는 되었지만 이러한 경향은 19세기까지 계속 되어 왔습니다. 물론 중세의 대학교가 등장하면서 이러한 전문화는 가속화되었고 전공이라는 것이 생기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모든 학문은 철학입니다.

박사 학위를 이야기하려면 대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같이 해야만 하겠군요. 대학교는 universitas magistrorum et scholarium이라는 라틴어에서 나온 말입니다. 장인과 학자들의 조직이라는 뜻이랍니다. 여기서 장인은 지금의 공과대학 정도고 학자들은 이과대학과 인문계 대학을 말하는 것인 듯 하지만 제 생각이고 아무튼 중세 대학교라는 것이 9-10세기에 유럽 여러 곳에서 등장하게 됩니다. 이 때 신학, 철학, 문학 등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교수들이 생기게 됩니다. 이 때에도 신학, 의학, 그리고 법학 (최근에도 인기있는 과들이군요 :))을 제외한 모든 학문은 철학이라고 불리는 시절입니다.

이 때의 유래를 바탕으로 1900년대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박사학위라는 것이 생긴 뒤에도 신학, 의학, 법학을 제외한 모든 과의 최고 학위는 철학박사라고 불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양의 예이고 Ph.D를 한자문화권에서는 박사(博士)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지요. 박사는 중국의 진(秦)나라 때 학문을 맡은 관직으로서 처름 설치 되었다는군요. 한(漢)나라에서는 오경박사가 교육을 담당하였고 진(晉)나라에서는 국자박사 율학박사 등으로 세부 전공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고조선 시대에 중국에서 위만이 망명해오자 준왕이 위만을 박사에 임명하고 100리의 땅을 준 것이 기록으로 나타난 최초의 박사입니다. 즉, 위만 박사가 우리나라 땅에서 임명된 최초의 박사이군요. 아무튼 우리나라에서도 역시 박사의 역사는 매우 깁니다. 이후로도 고구려의 태학박사라던지 백제와 신라의 박사 관직들이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박사 학위는 교육부에서 인정한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교육 과정을 통해 수여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나라 교육기관에서 수여하는 박사학위는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박사가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박사학위는 누가 받았을까요? 바로 고려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한 현상윤이라는 분입니다. 우리나라가 수립된 이후 고려대학교에서 조선유학사라는 논문을 1949년에 제출하여 1953년에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현상윤 박사는 그 때엔 납북되어 북한에 있어서 자신이 박사학위를 받았는지도 몰랐을 것이라 하는군요.

박사 학위는 옛날엔 학문에 관한 관직이었고 지금은 학문적 업적에 대한 그리고 학문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자격 증명처럼 되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박사학위가 일부 학과 일부 학교들에 의해서 다소 의아스러운 과정을 통해 생산되는 바람에 자격증명 조차 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 신문 기사가 있습니다. ㅇ 대학의 응용전자학과에서 어떤 분들이 조상 묘를 잘 쓰는 것이 후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합니다. 물론 제 짧은 식견이겠지만 저로서는 "응용전자학"과와 조상 묘자리의 풍수지리적 해석이 어떻게 관련이 되는지도 모르겠고 더더군다나 그게 박사학위 논문이 된다는 사실도 제게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혀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아무튼 박사 학위는 이렇듯 세계적으로 폭넓게 그리고 굉장히 오랜 역사를 가지고 오고 있으며 이제는 관직이나 선생님이라는 뜻에서 벗어나 일종의 자격 증명 같은 특징을 갖고 있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점점 쓸모가 없어진다고 해야할까요? 공부하는 것은 재밌었지만 (지금도 무척이나 재밌습니다만) 정작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의 가치는 그런 것이었군요 :)

아, 여담이지만, 박사 학위가 좋은게 하나 더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죽은 사람이 벼슬을 하지 못하였을 경우 학생이라고 칭합니다. 학생 서의성이지요. 하지만 박사 학위의 경우 옛부터 관직과 동일하게 취급하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다면 제 지방에는 이학박사 서의성이라고 되겠군요. 재미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

Posted by eui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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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축하해 이학박사 서의성씨 :)

  2. 오~ 늙은이같애! 죽음 뒤의 삶도 생각하게 되었다니.
    부모가 되면 그렇게 되는건가?

    • 의성 2007/06/29 18:19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죽은 뒤를 생각하고 살고 있다네. Memento Mori. 물론, 이와 함께 Carpe Di Em도 실천하고 있지. 죽은 뒤를 생각하면 현재를 열심히 즐기게 된다니깐. :)

  3. 우리학교 전산과는 공학아니었나요?
    여튼 축하드리옵니다. 서박사님. :)

    • 의성 2007/06/29 18:20

      그런건가? Computer Science 아니었어? ㅋㅋ
      전산학의 정체성은 애매모호해서 말이지. 오죽하면 얼마 전에 전산학의 정체성에 관한 책도 나왔더라. 읽어보려고 하고 있다.

  4. 오! 평소에 궁금하게 생각하던 내용들에 대한 답이 모두 들어있군!!
    훌륭한 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