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미국 땅을 밟은지도 어느덧 2주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지난 글에도 썼듯이 뭐 하나 쉽게 풀리는 일이 없고 가끔 황당한 일을 마주하게 되는 미국 생활로 인해서 지금까지 매우매우 스트레스를 받고 살았습니다.
여기에선 뭐 못마땅하거나 따질 일이 있어도 영어도 짧고, 화를 내면 안되는 분위기 탓에 참고 살다보니 홧병이 생길 것 같습니다만, 이런거 다 버리고 초연하게 살아야 살 수 있다는 선배들의 조언에 그냥 밑바닥 인생이라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아무튼 여기에선 참 바보 같은 일을 많이 저지르는데요. 일단 피곤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구석구석 낯선 부분들을 만나게 되어서 그렇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개러지(garage) 리모콘입니다. 가난한 학생 신분에 차고가 있는 집에 사는 호사를 누리고 있습니다.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로 차에 앉아 개러지 문을 열 수 있는 리모콘 키가 있습니다. 지지난주에 처음 와서 차가 없는 고로 SUV를 빌렸지만 렌트비가 너무 비싸서 승용차로 렌트를 바꾸었지요. 그리고는 렌트카 사무실에서부터 신나게 집으로 달려왔는데 아뿔사, 이 개러지키를 원래 차의 햇볓가리게에 꽂아두고 그냥 차를 반납해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다시 달려가서는 개러지키를 다시 받아왔었습니다.
후에 새로 빌려온 이 차가 배터리 방전으로 뻗어버려 견인해가고 다시 새 차를 가져왔는데 견인해 갈 때 역시 원래 차의 햇볓가리게에 이 개러지키를 꽂아두고 보내버렸지요. 그 날은 금요일 밤이고 노동절까지해서 3일 연휴의 시작이었습니다. 제가 그 개러지키를 다시 보게 된 것은 4일이 지난 뒤의 밤이었습니다. 그 때까지 차는 항상 개러지 밖에 서 있었지요.
개러지 리모콘을 이렇게 매번 잃어버리게 되는 이유는 뭘까요? 일단 개러지 리모콘을 꽂아두는 위치가 눈에 잘 안 띄는 햇볓가리게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개러지 리모콘이라는게 제 생활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핸드폰은 컵홀더에 꽂아두곤 하지만 잃어버리고 내리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익숙하기 때문이지요.
자 이번에는 전혀 몰라서 바보짓을 하는 경우입니다. 아기가 있는 집에서 청결은 필수. 청결의 핵심은 바로 청소기가 되겠습니다. 이사 와서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청소기를 장만했습니다. 샘즈 클럽이라고 우리나라의 킴스 클럽과 유사하게 회원비를 지불하고 대량의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마트에서 청소기를 하나 샀습니다. 하지만 타겟(월마트와 경쟁하는 미국 두번째 체인)에서 스팀이 되는 청소기가 이보다 약간 더 비싼 값에 팔리고 있더군요. 스팀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서 샘즈 클럽에 청소기를 반품하고 (너무나 바빠서 상자를 뜯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타겟에서 비셀 파워스티머라는 제품을 샀습니다.
시간이 어느덧 흘러 청소기를 사놓고 열흘이 지난 날, 드디어 시간이 나서 청소기를 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상자에서 꺼내 조립을 하고 일단 스팀은 나중에 하고 청소 부터 해볼까하는 마음으로 스위치 온! 뭔가 이상합니다. 청소기 앞부분이 매우 낮게 되어 있어서 쓰레기나 먼지가 청소기 안으로 빨려들어가는게 아니라 옆으로 밀려납니다. 그리고 물탱크는 있는데 먼지가 들어가는 필터나 탱크가 없습니다. 설명서를 아무리 찾아도 물청소 기능만 써있습니다. 뭐 일단 물 없이 대충 청소를 끝냈는데 청소가 하나도 안 되어 있더군요.
설명서를 다시 자세히 읽어보니 이런 말이 나옵니다. "효과적인 딥클리닝을 위해서는 진공청소기로 카펫을 먼저 청소하시오" -_-;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것은 카펫을 약품으로 스팀 청소하는 기계입니다. 진공청소기와는 다른 머쉰!이지요. 결국 다시 마트로 달려가 청소기를 사왔답니다. 이것은 카펫 문화가 없는 우리나라에서만 살다 보니 딥클리너라는게 뭔지 몰라서 발생한 해프닝이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로 인해 잘못된 선입견으로 바보짓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화에 보면 집 앞 드라이브웨이 진입로에는 언제나 우편함이 서있지요. 그리고 우편함에는 깃발이 있어서 편지가 오면 그 깃발이 세워져 있습니다(제가 반대로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자, 제가 여기 와서 은행계좌도 만들고 보험 신청도 하고 여러 가지 일을 벌리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3일 후엔 우편으로 서류가 도착할 것입니다. 5일 내로 카드가 발급됩니다 등등 이야기를 했는데 10일이 넘도록 우편함의 깃발은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매일 집을 드나들면서 이상하다 생각은 했지만 워낙에 바쁘기 때문에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2주가 지났습니다.
그런데 제가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도 다른 집들도 깃발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본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혹시나 하고 우편함을 열었더니 우편함이 꽉 차 있더군요. 심지어 전화번호부책까지 들어있었으니 우편함이 터질 지경이었습니다. 그것을 갖고 들어와서 살펴보니 보험 관련 서류 (이 서류를 다시 보내야 일이 진행됩니다라고 되어 있는), 직불카드, 은행 관련 서류, SSN 신청 관련 서류 등등이 들어 있더군요. 기가막힐 일입니다. 영화에서 봤던 우편함의 깃발이라는 이미지를 철썩 같이 믿었기 때문에 발생한 해프닝이었습니다. 실제로는 우편함의 깃발따위는 우체부는 신경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각자 알아서 확인을 해야하는 것이지요.
아무튼 뭐 이런 여러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저는 정말 바보~가 된 느낌입니다. 바보가 되는 바람에 억울한 일도 많습니다. 어떤 마트의 즉석식품 판매 코너에서 버팔로 윙을 팔고 있습니다. 뭐 영어로 대화하는 것에는 원래부터 쪽팔림을 모르기에 당당하게 물어보았지요. "이거 어떻게 계산되는거요?" 그랬더니 대답합니다. "쿼터 파운드에 얼마씩이에요" 저는 그렇다면 조금 담으면 조금내고 많이 담으면 많이 내는 줄 알고 둘이 먹을만큼만 담습니다. 그리고는 저 멀리 카운터로 갔습죠. 카운터에서 마트에서 산 다른 물건과 함께 버팔로윙을 올려놓습니다. 그랬더니 삑~ 하면서 그 쿼터 파운드 가격이 찍히더군요. 그렇습니다. 그 상자가 쿼터 파운드 규격 상자라서 거기에 채우기만 하면 무조건 그 가격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다음날입니다. 그 마트를 다시 찾았고, 중국요리를 파는 코너를 발견했습니다. 오호라~ 이번엔 실수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으로 포장박스를 하나 들어서 꽉꽉 눌러담습니다. 거의 이삿짐 포장하듯이 중국요리를 눌러 담고는 계산대로 향합니다. 무게를 잽니다 -_-; 무게대로 값을 받습니다. 정말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사실 한국이라면 눈치껏 분위기 파악해서 이런 바보짓은 안할텐데 낯설은 세상이라 그런지 눈치파악이 쉽지 않아 발생하는 일들이었습니다.
생활 양식이 달라서 바보 취급을 당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진원이가 몸이 좋지 않아 응급실을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병원의 응급실은 (또는 미국 병원의 응급실들은) Triage nurse라고 포스가 좀 있어보이는 간호사(심지어 오피스도 있습니다)가 먼저 환자를 진찰하고 서류를 작성해서 환자를 접수시킵니다. 그 간호사가 진원이에게 이것저것 체크도 하고 우리에게 여러가지를 물어보고는 서류를 작성하면서 말합니다. "서류 작성 다 되면 이것 가지고 나가서 접수하세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성격급한 한국인들 두 명 중 한 명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서류 작성 끝나기를 기다릴 것입니다. 저 역시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갈 채비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간호사가 갑자기 성질을 부립니다. "거기 앉으세요!" 저는 쫄아서 쭈구려 앉습니다. 그랬더니 간호사가 다시 말합니다. "제가 이 서류를 주면 저기 바깥의 접수대에 제출하세요" 저는 거의 다 되었다는 신호인 줄 알고 다시 일어섭니다. 그랬더니 이 간호사 거의 죽일 듯이 외칩니다 "거기 앉으라니깐!"
저 정말 서럽습니다. 아니 그럼 서류 작성 다 끝내고 말을 걸던가. 왜 아직 한참 남았으면서 끝난거마냥 말을 거는 겁니까? 그리고 거 좀 옆에 서 있으면 어떻다고 그렇게 성질을 부리는지... 뭐 병원에서야 환자가 약자이니 서러워도 찍소리 못하고 앉아있다가 서류 받아서 조용히 나왔습니다.
이것은 행동패턴이 서로 다른 사회에서 왔기 때문에 서로가 상대방에게 기대하는 행동 양식이 달라서 발생하는 오해라고 생각되지만... 기분은 참 나쁩니다.
앞으로도 얼마나 바보짓을 하고 바보취급을 당해야 여기서 제대로 살 수 있을지 앞날이 깜깜합니다.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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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허허허허
남이야기같지가 않구만 ^^
나도 오스트리아에 가서 처음에 은행계좌를 개설할 때,
스위스 은행에만 있는 줄 알았던 '보관금'이라는걸 보고 당황했었지.
이자율은 지금 한국의 제로금리보다 더 낮은 주제에 잔액이 얼마 이하로 떨어지면 현금보관료가 차감되더라구.
핸드폰을 만들었을 때도 SIM카드라는 녀석이 뭘 하는 놈인지 몰라
이리 갸우뚱 저리 갸우뚱 했었고,
여행을 가겠다고 기차표를 예매했을 때도 '유통기한 한달짜리' 티켓이 나와서 이거 정기권을 잘못 예매했나 싶기도 했다.
알고보니 한달 중 원하는 날짜에 아무 기차, 아무 좌석에나 타면 되는 표가 그 동네의 일반적인 표더라구.
앞으로 두 달은 이런저런 일 많이 겪을 것 같다 ^^;
난 2년 넘게 그 짓들을 반복하고 있다. -_-
아.... 역시 외국은... --;;;
화이팅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