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궁

철학개론 시간에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y)이라는 책을 소개 받고, 칼 포퍼의 사상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 어렸을 때엔 별 짓을 다 하고 살았습니다 - 도서관에 파묻혀 딱딱하기 그지 없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열린 사회란 인권과 자유를 기본으로 투명하고 비밀 없이 유지되는 정부가 책임감있고 관용적이고 유연하게 사회를 운영하는 형태를 말합니다. 즉, 자유와 평등이 기본인 것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민주국가들은 열린 사회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민주화 운동을 비롯하여 열린사회를 향해서 줄기차게 달려오고 있는 모습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부심까지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 찬물을 끼얹는 조직이 있습니다. 바로 열린 사회를 인정하지 않는 금융결제원입니다.

일단 본론으로 가기 전에 울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울산에는 현대자동차와 모비스의 공장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울산에는 유독 현대자동차가 눈에 많이 띕니다. 만약 울산에 어느 등록사업소에서 자동차를 등록하러 갔는데 등록용지의 차종란에 객관식으로 현대자동차의 차종들이 나열되어 있고, 사람들은 간편하게 동그라미를 치기만 하면 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할 것입니다. 하지만, 대우차를 등록하려 한다면? 당연히 그런 서식은 말이 안 되지요. 그래서 대우차를 가진 사람이 따집니다. "아니? 이러면 대우차를 산 사람은 등록을 어떻게 하란 말이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등록사업소는 자동차를 등록해주는 곳이지 현대차 또는 그 지역에서 많이 팔리는 특정 회사의 차를 등록해주는 곳이 아닙니다. 열린 사회를 지향한다면 이유도 없이 우리에게 특정 회사의 차를 강요하는 이러한 규제는 없어져야겠지요? 그래서 따집니다. "대우차를 산 사람은 등록을 어떻게 하란 말이오?" 관공서 직원의 답은 무엇이겠습니까?
"이 동네엔 현대차가 대부분이라 등록용지를 이렇게 만들었소. 이렇게 만들면 등록하러 온 사람이 일일이 회사 이름, 차종 이렇게 기록하지 않아도 간단하게 작성할 수 있지 않소. 등록하고 싶으면 현대차 사시오."
어의가 없지요? 물론, 이 예는 전혀 사실과 다른 가정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도 안되는 주장을 펴는 공공기관이 실제로 존재합니다. 바로 금융결제원입니다.

오픈웹( OpenWeb, http://www.openweb.or.kr)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말그대로 열린사회와 같은 개념으로 열린웹을 만들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지금의 웹, 즉 인터넷이 열려있지 않은가요? 보통의 윈도우즈 유저들은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위의 예에서 현대자동차를 타는 사람은 전혀 불편을 느끼지 못함과 같습니다.

네, 맞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인터넷 환경은 전혀 오픈된 개념이 아닙니다. 컴퓨터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윈도우즈 PC와 함께 미국의 대학교 컴퓨터 매장에서는 이미 40% 이상의 점유율을 보이는 맥(Macintosh)이라는 컴퓨터도 있고 미국을 비롯해서 전세계의 대학교에서 널리 사용하고 있거나 한국의 많은 컴퓨터 매니아들이 사용하는 리눅스라는 운영체계를 사용하는 컴퓨터도 있습니다. 아울러서 소수이긴 하지만 Solaris라 불리는 운영체계를 사용하는 서버형 컴퓨터를 사용해서 인터넷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치 다민족 국가와 같은 개념이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우리나라 헌법은 모든 사람이 성별, 나이, 인종 등으로 차별 받지 않음을 보장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상식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사용하는 컴퓨터로 인해서 차별 받는 것은 어떨까요? 현재 우리나라 전자정부나 인터넷 쇼핑의 전자결제는 윈도우즈 PC 이외의 컴퓨터에서는 전혀(!) 사용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 전자정부는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내년부터는 모든 운영체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바꾸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도대체 왜 우리나라의 전자정부와 전자결제는 윈도우즈에서만 실행이 되었을까요? 일부 사람들의 주장처럼 윈도우즈가 가장 진보된 기능을 제공해서일까요? 그렇다면 같은 기능을 내년부터는 어떻게 모든 컴퓨터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고칠 수 있을까요?

인터넷은 전세계적인 공동체입니다. 때문에, 각국의 다양한 환경에서 최대한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제공받기 위해 전문가들이 모여 표준이라는 것을 개발합니다. 이 인터넷 표준들은 실로 다양합니다. 다양한 웹브라우저(익스플로러와 같은 프로그램)들에서 동일한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는 표준부터 금융 서비스와 같이 개인적이고 조심스러운 데이터들을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보안표준까지 우리들이 웹브라우저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서비스들에 대해서 표준이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거의 모든 사이트들은 이 표준을 잘 따르고 있거나 최소한 표준을 지원하는 웹브라우저를 통해서 완전히 동일하진 않지만 비슷한 수준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독 대한민국만 다릅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공공기관일수록 더욱 다릅니다. 국제적인 약속따윈 없는 것인냥 윈도우즈에서만 통하는 Active X라는 기술을 사용해서 모든 사이트와 서비스들을 꾸며놓았습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린 개발자와 기획자들이 댈 수 있는 변명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1. 표준을 몰랐다. 또는 표준의 중요성을 몰랐다. 2. 표준만을 사용하면 구현하기 어려운 기술이다.

전자정부의 경우 마이크로소프트 조차도 Active X의 불합리한 점을 인정하고 윈도우비스타에서는 Active X의 제한을 걸기 시작하자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1번의 이유를 인정하고 서둘러서 표준을 지켜 다시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금결원은 어땠을까요? 1번은 인정하기 싫었던 모양입니다. 2번을 주장하자니 말이 안됩니다. 인터넷 표준과 자바(Java) 등의 표준 기술을 이용한다면 지금과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살입니다. 그래서 3번 답을 "개발"합니다.

"공인인증 기관은 (모든 사용자에 맞춰) 가입자설비 소프트웨어를 배포할 의무가 없고, 현실적으로 (비(非)IE를 사용하는 시장도 없다"

2007년 10월 20일, W3 Counter라는 기관에서 조사한 MS의 인터넷익스플로러(IE)의 전세계 점유율은 63% 입니다.
100 - 63 = 37.
37!!! ->  비 IE를 사용하는 시장도 없다.  ???

자, 그렇다면 저 주장은 정말 거짓말이었을까요? 안타깝게도 사실입니다.
http://internettrend.co.kr의 조사에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인터넷 쇼핑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99.53%가 IE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밌는게 있습니다. Google Analytic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10% 이상이 IE가 아닌 브라우저를 사용한다는군요.

인터넷 쇼핑의 핵심은 결제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금융결제원은 IE만을 사용하도록 사실상 "규제"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나라에서 IE를 사용하지 않으면 인터넷 쇼핑을 이용할 수 없는데 그렇다면 0.5%의 사람들이 결제도 못하면서 인터넷 쇼핑몰을 들여다봤다는건데 저는 그게 더 의아스럽군요. 갑자기 개인컵을 안 들고가면 물을 못 마시는 훈련소의 식당이 생각나는군요. 훈련병들의 99%는 식당에 개인컵을 들고 다닙니다. 왜? 좋아서? 없으면 물을 못 마시게 하니깐...

그렇다면 이러한 결제는 꼭 IE에서만 해야할까요? 유럽까지 안가도(독일은 IE의 점유율이 60%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표준을 지키는 어떠한 브러우저에서도 인터넷 쇼핑이 가능합니다. 물론 보안은 유지됩니다. 아직까지 인터넷 뱅킹 시스템의 해킹으로 보안사고가 난 경우가 뉴스에 나온 것을 본바 없습니다.

저 역시 PC를 갖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생활할 때 윈도우 PC 없는 사람은 바보나 다름 없는 상황이므로 윈도우 PC는 기본으로 갖고 미국으로 왔습니다. 하지만, 99%의 시간을 맥이나 리눅스와 함께합니다. 전혀 불편을 못 느낍니다. 오히려 공짜로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즉각즉각 구할 수 있어서 너무나 편리하고 좋습니다. 한국에 계신 리눅스와 맥 유저분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정도입니다.

그냥 귀찮은데 윈도우쓰지 뭘 따지나~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군사독재를 비롯해서 지금도 세계의 많은 민주화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실상 일반 국민은 독재정치이건 뭐건 그닥 일상에 영향을 받진 않습니다. 그냥 귀찮은데 뭘~ 시키는대로 하지 뭘~ 이런 모드라면 독재자 밑에서도 세상은 편해집니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남의 의지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면 열린사회는 오지 않습니다.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자유인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합니다. 제가 이 글을 통해서 주장하고 싶은 것은 비단 금결원의 비IE 지원 뿐만이 아닙니다.

소수자들의 부당한 권리 박탈을 체제유지의 편이성이라던지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서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아직도 우리나라에 많이 남아있습니다. 젊은 우리들이라도 자신이 직접 영향이 없다고 해서 소수자들에게 너희 그냥 살아라라고 말하지 않는, 더 나아가서 소수자편에서 같이 싸워주는 것을 바라는 뜻에서 이 글을 장황하게 적어봅니다.
Posted by eui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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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군..
    서박사 힘내3~

    • 의성 2007/11/04 10:29

      김바사도 힘내3
      곧 ㄱ 받침 달고 학교를 나와야 다시 만사형통이 되지 않을까? :)

  2. 자취집에 맥북 하나만 덜렁 놓고 쓰는데 역시 가장 힘든건 결제 자체가 불가능 하다는 점입니다요. (덕분에 지름신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무엇보다 쇼핑몰들이 이런 불편을 "비주류 사용자의 탓"으로 넘기려 한다는 것이 큰 문제인 것 같아요. 한때 싸이월드에서 "파이어폭스는 지원하지 않습니다" 라는 문구와 함께 불여우가 고개 숙이고 미안해 하는 그림을 올려서 문제가 되었듯이요. - 결코 불여우가 미안해할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 에잇!! 생각해보니 젤 나쁜곳은 공공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저런 말도 안되는 태도를 보이는 금융결제원이로군요!!! 버러지들 ㅠ_ㅠ

    • 의성 2007/11/04 10:28

      정현아 혹시 레오퍼드 샀어?
      리눅스나 윈도우즈나 새 버젼 나오면 당장 바꾸게 되는데 맥은 레오퍼드로 가야하나 싶다. 여기서 교직원 할인으로 69불이면 사는데 타이거에 비해서 그닥 와닿는 기능이 없네. 더군다나 최근에 Ubuntu를 메인머쉰으로 쓰고 있어서 더욱 욕심이 안 생긴다.

  3. 아니요~ 저도 아직 타이거에 머물러 있어요. 점점 무뎌지는 건지, 요즘은 그저 새로 나온 어플리케이션들만 관심이 가네요 ㅠ_ㅠ 심지어는 우분투 7.10은 다운도 안 받아봤어요 ㅎㅎㅎ 그래도 올해 안에 레오파드랑 우분투 7.10 으로 다 갈아탈까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