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궁

제가 학문의 세계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대학원 초년시절, 제게 논문을 지도해주던 선배가 늘 하는 이야기가 "내용은 30, 표현이 70"이었습니다. 본질 보다는 포장을 중시하는 것에 대해 약간 반감 같은 것도 있었지만, 실제로 수년간 연구를 해오면서 이 이야기는 거의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남들에게 이해시키지 못하는 뛰어난 기술보다는 남들이 쉽게 이해하는 간단한 기술이 낫다는 것이지요.

한국 시간으로 오늘 새벽, 미국에서는 스티브 잡스가 iPhone OS 4.0을 선보였습니다. 보름도 안되서 45만대를 팔아치운 iPad의 열풍과 이제는 명실상부 브라우저 사용량 기준 스마트폰 1위인 iPhone의 성공으로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큰 변화를 가져올 새 운영체제에 쏠린 관심은 지대하였을 것입니다.

오늘 새벽 팟캐스트를 통해 1시간 가량의 발표를 보았습니다. 제게 "내용은 30, 표현이 70"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시켜주었습니다. 이것은 스티브 잡스의 발표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iPhone OS 4.0의 인터페이스의 훌륭함을 이야기합니다.

제 견해로 iPhone OS 4.0의 가장 훌륭한 기능 두가지는 멀티태스킹과 iAD입니다. 멀티태스킹 지원은 현재 iPhone만 안 되고 있었으며, 대부분 스마트폰들은 이미 지원하고 있는 기능입니다. 잡스도 이야기했듯이 멀티태스킹 지원은 매우 쉽습니다. 멀티태스킹 지원은 안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울 정도로 쉬운 기능입니다. 하지만, 안 했던 이유는 멀티태스킹이 지원되면 그 때부터 사람들의 혼란이 증가하기 때문이지요.

iPhone OS 4.0의 멀티태스킹 기능은 기존 무조건 같이 돌리고 보는 멀티태스킹 기능을 사용자 입장에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씌웠다는 것이 다릅니다. 그 내부는 같을지라도 그것을 동작시키기 위한 조작법이 너무나 편하고 아름답기에 더 이상 멀티태스킹은 어글리한 기능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iAD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TV광고와 인터넷 광고의 장점을 모두 모아 간결하고 통일된 인터페이스를 통해 사용자들의 주의를 분산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광고를 제공합니다. 특히, 광고를 보면서 바로 물건을 구매하거나 광고가 마치 게임처럼 제공되거나 광고를 보는 중에 하던 일로 바로 돌아갈 수 있는 기능은 광고가 궁금해도 하던 일에 방해를 받을까봐 클릭하지 못했던 제 경험에 비추어 광고 접근에 대한 벽을 허물었다고 할만큼 광고의 효과를 높인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기술들 중에 과연 논문으로 작성할 가치가 있을만큼 (최소한 컴퓨터과학의 견해로) 기술적 발전을 이룬 것이 있을까요? 0에 가깝습니다. 그 어떤 기능도 새로운 것이 아니며 보여주기만 하면 누구나 몇달내로 따라할 수 있을만큼 특별한 기술적 진입장벽도 없습니다. 하지만,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보여주기 전까진 누구도 생각못했던 것들입니다.

이젠 연구자들도 기술의 본질을 발전시키는 것에서 벗어나, 이미 있는 기술을 원숙하게 다듬어 사용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감성적인 접근을 하는 것도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논문 Abstract의 말미에 상투적으로 등장하는 "본 논문에서 제안하는 방법은 xxx를 yyy% 향상 시켰다"는 문구보다 "본 논문에서 제안하는 방식은 xxx 기술을 yyy 상황에서 사용할 때 사용자들이 zzz% 더 선호하도록 하였다"라는 표현이 등장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저작자 표시
Posted by euiseong

댓글을 달아 주세요